posted by opwopw 2011.10.02 23:40
2011. 6. 26

사진 설명은 가이드의 '영어' 설명과 제 기억에 의존한 관계로 사실과 다를 수 있음.




Birkenau 제2 수용소. 열차가 수용소 안까지 들어올 수 있었고 내리자마자 분류 작업이 이뤄졌다. 가운데 유태인들과 군의관, 장교가 보인다. 상단 건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노동력으로 분류된 사람들. 우측의 사람들은 노인 남성, 임산부, 나이든 여성, 아이들 등은 바로 가스실로 들어갔다. 현재 분류되고 있는 지팡이 든 노인은 20분쯤 뒤에 살해당한 것으로 추측됨.



 
 '일하면 자유로워진다'. 어렸을 때 읽은 책에 따르면, 나치의 대학살은 반문명이 아니라 근대 문명의 종착이었다. 이성적으로, 체계적으로 집행되었고 신속했다. 끊임없이 효율을 고민했고, 학살 뒤의 재와 머리카락조차 재활용했다. 대상이 인간이었을 뿐이다. 위 문구 또한 근대의 노동관을 집약해 보여준다. 아우슈비츠에서 근대는 파산했고 1968년에 현대가 시작되었다. 

...마지막 문장은 내 맘대로 끄적였다. 보통 현대사의 시작은 1917년으로 잡는다.


 
'쉰들러 리스트'를 보면 크라쿠프(Krakow)의 유대인들은 먼저 게토에 수용된 뒤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래서 자신들의 운명을 어렴풋이 예측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2차 대전 발발 후에 서유럽에서 끌려온 유태인들은 자신들이 강제로 옮겨진 도시에서 다시 터전을 잡아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짐을 들고 왔다. 독일군은 나중에 돌려준다고 하며 가방에 이름을 쓸 것을 명령했고, 그들은 짐에 이름을 쓰고, 수용소로 들어간 다음, 아이들과 어머니들은 바로 가스실로 들어갔다. 사진에 나온 이들은 1시간 안에 죽었다. 영화에는 이 두 부류의 유대인들이 섞여서 나온다.





체코(폴란드였나?) 출신의 사회주의자(이것도 가물가물)이자 사진작가였던 아우슈비츠의 사진사는 국경 탈출 직전에 나치에 붙들렸고, 이 곳에서 입소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었다. 독일군이 신원조회를 하기 위해서였는데, 얼마 못가 그만두었다고 한다. 죽도록 굶기고 노역을 부렸기 때문에 나중엔 너무 말라서 처음에 찍은 사진으로 본인이 맞는지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죽도록 굶겼다. 굶어죽는 사람도 죽지 않았다. 가스실과 노동의 차이는, 빨리 죽든지 천천히 죽든지의 차이였다. 이 사진작가는 살아남았다고 들은 것 같다. 

위 사진의 인물들은 나치가 남긴 서류를 토대로, 모두 죽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진 밑에 입소날짜와 사망날짜가 적혀있다.






  침실. 불결한 건 둘째치고 너무 부실하게 공사해놓고 한 칸에 7-8명을 집어넣었기 때문에, 자는 동안 무너져버러 깔려죽는 사고도 빈번했다고 한다. 그래서 희생자들끼리 맨 윗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을 벌였고, 결국 맨 밑에는 나이가 많거나 몸이 약한 이들이 잤다고 한다. 그리고 깔려 죽거나, 굶어 죽거나, 가스실에서 죽었다.









'죽음의 벽' 을 사이에 둔 건물 두 채. 창문이 나무 덮개로 가려져 있다. 다른 수용자들은 총성을 들었지만, 현장을 목격할 수 없었다. 나치는 범죄의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했다.






'죽음의 벽(The Death Wall)'. 유태인, 집시 등 대량 학살을 위해 끌고온 이들이 총살당하지는 않았다. 독일이나 점령된 국가의 레지스탕스, 공산주의자 등 나치에 대항한 이들이 죽었다.





교수대. 맞은편 건물 두 채 사이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고, 종종 나치는 수용자들을 이 공터에 모둔 수용자들을 정렬시켜놓고, 교수대에 탈출하려다 붙잡힌 이들을 매달았다고 한다. 수용자들은 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절망했다. 소련군이 아우슈비츠를 해방시키기 전까지는.





The only one remained 'Gas chamber' in Auschwitz and Birkenau. The others were destroyed by Nazis, to hide the evidence of crime.






가스실은 1층과 지하로 나뉜다. 1층엔 사진처럼 소각로가 설치되었고, 지하에는 탈의실과 가스실이 있었다. 알려져있다시피 나치는 샤워를 한다는 명목으로 탈의실에 서둘러 옷을 벗게한 뒤 정신없이 들어가게끔 했다. 아우슈비츠에서는 사이클론 B라는 가스만 사용되었다. 이 물질에 물을 부으면 기화되면서 다량의 산소를 흡수해버린다. 희생자들은 질식사했다. (이 설명은 솔직히 제대로 이해를 못해서 확실하지 않다.) 2시간쯤 후에 노역자, 즉 다른 유태인들이 시신을 꺼내 불살랐다.






Gas chamber, 가스실. 수십만명이 스러진 방에 추모비와 꽃을 두었다. 희생자들의 시신을 화장한 재를 수용소 안팎에 흩뿌렸기 때문에 수용소와 인근 지대는 거대한 무덤이 되었다. 그래서 어느 곳이 희생을 기리는데 가벼운지 중한지 구분한다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하긴 하다. 그래도 박물관 측은 특별한 장소를 골라 추모의 표시를 해놓았고, 대부분 사진 촬영 금지이다. 유명한 죽은 여성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천도 봤지만, 가이드가 사진 찍지 말아달라고 부탁해서 찍지 않았다. 가이드가 제지하건 말건 찍는 사람들도 있긴 있다. 살아있는 사람들을 마루타 삼아 첫 가스실 실험이 행해진 곳도 촬영 금지이다. 

하지만 관리하는 사람들도 도저히 가스실과 죽음의 벽까지 촬영을 막을 수는 없었나보다. 가이드도 아무 말 없었다. 딱 한 장씩만 찍었다.






Birkenau 제2수용소의 가스실 폐허. 제2수용소는 몇몇 건물이 남아있어서 투어 코스에 포함되어 있지만 제3수용소는 나치가 완전히 파괴해버렸다.

이 폐허 앞에서 많이들 울었다..






Birkenau 제2수용소에 세운 추모비와 석판들. 희생자들이 썼던 언어로 기록되었고, 영미권 포로들은 수용된 적이 없지만 방문객들을 위해 영어 석판도 있다.

'For ever let this place be a cry of despair, and a warning to humanity, where the Nazis murdered about one and a half million men, women, and children, mainly Jews from various countries of Europe.'

Auschwitz-Birkenau
1940-1945




추모비. 그러고보니 세로 사진이 아니라 가로 사진을 골랐네 쩝. 가스실 건물의 굴뚝 모습을 본따 만들었다. 전체 모습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posted by opwopw 2011.10.02 23:20

2011 .5 .15 

바보 놀이,,, 


실수 1 : 유레일패스 규정을 착각. 다른 대안이 없어서 토리노 - 바르셀로나 주간 이동 결정.

리옹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열차편. 아침 8시 열차부터 시작해서 7회 환승, 바르셀로나 역에 밤 11시 30분 도착. 대신 비용은 3유로밖에 안 들었음. 트랜이탈리아 스탭이 예약도 안한 나를 왜 패스만 보고 지나쳤는지 여전히 이해 불가. 덕분에 18유로 세이브.

절대 관광객이 안 갈 소도시들을 주파하며 특이한 풍경 많이 보았음. 철도 직원들이 유레일패스를 어떻게 확인해야 하는지 모르는 도시들;;; 어쨌든 두려워했던 것만큼 끔찍하지는 않아서 다행. 하지만 절대 권하고 싶지 않음.

 

실수 2 : 와인 농가 놀러갔다가 좋은 와인이 저렴해 눈뒤집혀 5병 구입. 후에 한 병 구입. 문제는 너무 무거움... 현재 캐리어 40kg 이상, 베낭&보조가방 합쳐서 6-7kg으로 짐작됨.

해서 총 거의 50kg을 가지고 다녔음. 단지 캐리어를 끌었을 뿐인데 어깨, 이두, 삼두에 힘 빡주고 다님. 최대정지마찰력의 무서움을 맛보았음. 같은 방 쓰고 있는 싱가폴 애들이랑 같이 마시든 해서 와인은 바르셀로나 있는 동안 반 이상은 해치워야할 듯. 아쉽지만. 원래 선후배님들 만나서 마실려고 산 건데 제길.

 

바퀴 고장은 너무 무거운 짐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게 다 이 늦은 시간에도 역에 대기하고 있던 소매치기놈들 때문... 동양 남자애 혼자 있는 거 보는 순간 어디로 가느냐는둥 캐리어 들어주겠다는둥 한 놈이 와서 귀찮게구는걸 내가 적당히 받아주자 저 쪽에서 자판기 조작하는 척하던 두 놈이 접근. 뭐 나는 토리노에서 소매치기 만난 적도 있고 해서 항상 주의하며 다닌 터라.. 등 뒤의 두 놈이 이쪽에 신경쓰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음. 그래서 이탈리아어로 뭐라뭐라 지껄이면서 적당히 빠져나옴. 근데 이 놈들이 지하철로 내려가버리고, 다른 승객들이 이동하는 눈치를 보니 지하철로 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섣불리 내려갔다가 소매치기는 피할 수 있는데 퍽치기 당할까봐 염려되어 결국 도보로 이동. 그러다 캐리어 고장남.

 

-

 

학기말, 너무 바빠서 굉장히 불규칙적으로 지냈고, (어제만 해도 5시간 잤고 엊그제는 한숨도 못 잠.)  오는 동안 환승 시간이 부족해서 아침만 먹고 두 끼니 모두 거름. 출국 당시에 비해5-6kg 빠졌고, 앞으로 더 빠질 예정. 예나 지금이나 다이어트는 유럽이 시켜주는듯.

엄청 피곤한 상태. 벌써 새벽 3시 30분. 자야함. 여행 초장부터 왜 이래.



2011. 5. 18
 

1.

 

1년 가까이 요가를 했는데도 한번 망가진 몸이 회복되지는 않는구나. 4개월만에 도로아미타불ㅠ 노인네도 아니고 목, 어깨, 허리,등까지 안 아픈 곳이 없네. 군대 있을 때 다친 왼쪽 무릎은 이젠 방치해놓으면 안될 상황인 것 같고. 엑스레이 찍어봤을 때 이상 없었으니 연골, 인대 이 쪽인 것 같은데 이건 뭐 어떻게 해야하나? 여행은 50일 넘게 남았고. 일정을 줄일까..

 

2.

 

바르셀로나 : 예상과 정말 다른 쾌적한 대도시. 소매치기 경험담만 읽었을 때는 소돔과 고모라 정도로 여겼는데. 정보 수집하다 바르셀로나가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라는 사실을 망각했나보다. 허허벌판에 짓기 시작해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된 건물 블록 한 쪽을 차지하고 차도와 맞닿아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모습이 과거와 현재를 대변하는 것 같다. 덕분에 근처는 몰리는 인파와 이들을 피해다니는 자동차로 항상 북새통.

 

아무리 물어봐도 스페인 내전이나 민주화 운동을 다룬 박물관, 기념관은 없다고 한다. 이상하네. 피카소 미술관에서 하던 전시에서 본, 카탈루냐인들이 20세기 초를 바라보는 시선은 기억과 평가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듯한 느낌이었는데.

 

소매치기 또 만났고. 




5/17

 

Deutsche Kammerphilharmonie Bremen - Josep Pons / Palau Musica Catalana, Barcelona

Beethoven op.61 (Violin : Frank Peter Zimmerman)

Dvorak symphony No.8

18유로 - 3층

 

하루종일 이동하느라 예매해둔 카탈루냐 전통음악 공연을 날려먹어서 눈물을 머금고 다시 예매한 공연. Zimmerman이 피아니스트 치메르만인줄 알고 질렀는데 독일 바이올리니스트 짐머만 ^-^ 착각했지만 결과는 좋았다.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고 있는 젊은 연주자는 껑충한 키와 ‘나 독일인이요!’라고 써붙인 듯한 다부진 얼굴과 달리 깃털처럼 가볍고 우아한 연주를 했고, 최근 경향에 어울리는 소규모로 편성된 브레멘 필하모니와 궁합도 잘 맞았다. 바람직하게도 카탈루냐 음악당은 층간 이동을 제재하지 않아서 협연이 끝난 뒤 3층에서 2층 오케스트라 옆 좌석으로 이동했다. 단촐하게 구성한 오케스트라가 교향곡 1악장에서 선보인 파워풀한 연주는 사람 많고 목소리 크다고 연주에 힘이 실리는게 아님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박수치지 않기 위해 있는 힘껏 주먹을 쥐어야했던 연주! 이에 반해 4악장은 마무리라고 하기엔 너무 힘이 풀려서 아쉬웠다.

 

 

5/21

 

West-Eastern Divan Orchestra - Daniel Barenboim / Salle Pleyal, Paris

Gustav Mahler Symphony No.10

Beethoben Symphony No.3

 

기대했던 공연. 실연 직전 선착순 예매가 특이했다. 28세 미만과 60세 초과만 가능. 그래서 새파란 젊은이와 노인들만 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좌석도 입석, 합창단석, 발코니석 등 열악한 자리를 싸게 파는 게 아니라 취소되거나 남은 좌석들을 일괄 처리하면서 젊은이와 노인 관객에게 싸게 파는 현매였다. 나라의 과거를 존중하고, 미래를 교육하는 프랑스의 방식인가. 덕분에 30유로에 1층 포디엄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약간 떨어져있긴 했지만 이게 어디야. 사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이름값 때문에 30유로씩이나 지불해야 했었고, 홈페이지 들어가서 살펴보면 다른 공연은 이보다 저렴할 듯.

 

2시간 전부터 줄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 훤칠하게 생긴 프랑스 젊은이가 접근해 자기 표 사지 않겠냐고 제안. 접근하는 사람은 일단 의심하고 보는 여행객의 기본 마음가짐과 어떤 자리인지 알 수 없다는 불안함 때문에 머뭇거리는 사이 다른 여성 관객이 접수해버렸다. 들어가서보니 나보다 두 줄 정도 앞 좌석. 아오 아까워라 15유로는 아낄 수 있었는데ㅠ

 

100명에 육박하는 대규모 편성. 조율음에 전율, 지휘자의 등장에 또 전율.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말 기대하고 있었나보다. 책에서 본 사진에 비해 몰라보게 늙고 찐;;; 바렌보임. 브레멘 필의 지휘자와 달리 포인트만 찍어주는 지휘. 하지만 팔을 휘저을 때만큼은 힘이 넘친다. 녹음, 녹화, 촬영 금지를 강조하는 안내 방송과 마이크, 방송 카메라가 여러 대 설치된 걸 보니 DVD로 낼 모양이다.

 

말러 10번. 전 악장 연주로 여겼는데 30분짜리 1악장 연주하고 끝. 악장 끝나고 모두 박수치길래 왜 이러나 싶었는데 1악장만 연주. 바렌보인은 데릭 쿡이 완성한 2악장 이후는 말러의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는 걸까? 전 악장을 연주하는 지휘자들도 더러 있을텐데, 1악장만 연주한다는 걸 관객들이 어떻게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팜플렛은 10유로나 요구해서 사지 않아 보지 못했지만, 인터넷 상으로는 전혀 알 수 없었는데. 연주는 참으로 유려했다.

 

베토벤 3번. 무난한 1악장에 이어 2악장은 장중장중장중, 3악장은 격정격정격정, 4악장은 3악장의 템포 그대로. 바렌보임답다. 문제는 브레멘 필하모니에 비해서도 앙상블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점. 초보 리스너의 귀라 확신할 수 없지만, 미스 터치는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미묘하게 앙상블이 어긋나는 느낌이었다.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일까? 3악장과 4악장의 분위기를 비슷하게 끌고 가버렸고, 쌓인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밤 10시가 지나면 졸음이 몰려오는 배낭여행객이라 4악장은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둘 일어서더니 마침내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다른 관객들을 보며 갸웃. 이 정도로 훌륭한 연주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아, 우리의 시크한 바 할배, 환호하든 말든 앵콜 없이 콘서트 끝. 참, 브레멘 필은 교향곡 3악장 앵콜로 한 번 더 연주.

 

이상하다 싶은 부분이 있었지만,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울림은 대단했다. 바렌보임의 고색창연한 스타일은 의외로 빠른 악장보다 느린 악장에서 빛을 발했다. 온 몸을 진동케하는 울림이라니.

 

-

 

계획 상으로는 베를린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드레스덴 슈타츠카빌레, 빈필 모두 보는 웅대한 일정. 콘세르트헤보우는 체류 기간 동안 딱히 볼만한 공연이 없어서 제외. 코펜하겐 악단이나 뮌헨 필을 넣을 지도? 그러나 네 군데 모두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게반트하우스는 바흐페스트 전야 공연이라 티켓 구하기 힘들 것이고, 드레스덴은 도대체 무슨 행사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호스텔이 동났다. 뭔가 사람들이 몰리는 것 같아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 게다가 협연자가 폴리니인데… 일정을 늦게 잡다 보니 축제 일정이 겹치는 게 축복이 아니라 재앙. 숙박료도 비싸고, 숙소 구하기도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ㅠㅠ 1박마다 숙소를 옮겨야 하는 이 놈의 두 도시들ㅜㅜ 



2011. 5. 28

호스텔마다 시트에 매트리스까지 까뒤집으며 체크했지만 결국 베드버그를 막지 못했다. 이 놈이 어디서 들러 붙은 건지 모르겠다. 다행히 뜨거운 물에 돌려버린 빨래 어딘가에서 고이 하직하셨는지, 이제 기어들어갈 이불 혹은 캐리어 안의 옷가지 어딘가에 숨어계신지조차 알 수 없다. 암담하다. 내일 일어나봐야 알 수 있을 듯.

 


2011. 6. 4

이대로 가다간 배고픈, 아니 굶주린 소크라테스가 되겠구나ㅠ 미술관에 가기 위해 끼니 먹을 돈을 아끼고, 너무너무 졸려서 세수하면서 미술관을 보다니. 내가 수험생인가.

다행히 호스텔 근처에 저렴한 먹거리가 많아서 좋다. 배를린이 이런 음식은 제일 저렴한 듯 ㅎㅎ 그런데 호스텔 생맥은 맛이 없구나 독일인데ㅜㅜ

 


2011. 6. 5

저녁을 굶고 오페라를 보다. 이 궁상맞은 포스팅은 여행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인가. 베를린 졸라 덥다. 파리 수준은 넘었고 이것은 바르셀로나의 햇볕. 신 국립갤러리에서 풀려버리려는 다리를 붙잡고 의자에 앉아 30분 넘게 자버렸다. 간만에 인상 깊은 현대미술관이었는데 자버린 통에 제대로 감상하지도 못하고. 잘 먹어야 좀 회복될 텐데 정말 돈이 웬수구나. 옆에 있던 직원은 나를 어떻게 봤을까. 좀 깨워주지.



2011 . 6. 8

‎"How weak and fragile democracy." - Mort, American guide of 'The Third Reich' walking tour.

...in South Korea.



2011. 6. 10

유랑에 프라하를 검색해본 결과 : 현지 장사꾼들이든 경찰이든 모두 여행객의 적. 유럽 여행할 때 해당 도시의 1년치 정보 검색은 필수.



2011. 6. 12

'북부의 피렌체'라는 별명은 없어져야 한다. 피렌체가 '남쪽의 드레스덴' 이겠지. 아름답고, 아름답다. 수만명의 목숨을 날려버린 연합군의 폭격은 유감스럽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드레스덴이 얻은 역사성은 유산을 상속받아 잘 팔아먹으며 사는 피렌체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불경스럽다. 베를린에서도 절감했지만 이 민족은 오욕과 수치의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념해야 하는지 정말 잘 안다. 역사적으로, 미학적으로.

 

항상 니스-생폴을 홍보하며 돌아다녔는데 이젠 드레스덴도 추가해야겠다. 다 제치고 복원된 구시가와 엘베강의 아름다움만으로도 한번쯤 둘러봐야 하는 도시. 이젠 나는야 독빠.

 

참, 오늘은 엘베강 쪽 옛 귀족이 만들고 전후에 복원된 정원에서 아가씨 두 명이 홀딱 벗고 서로를 사진 찍으며 뛰어다니는 모습을 봤다 -_-;; 아마 행위예술하는 학생들인듯  -ㅅ- 참 여러 모로 놀라운 도시랄까  ( -_-) 그 친구들 설마 그 꼴로 교회있는 광장까지 뛰어간 건 아니겠지;;;;

 

사진은 나중에.

 

 

- 지금 신시가쪽 서민 + 젊은애들 술 먹는 동네 호스텔로 옮겼는데 동네가 참 트렌디하고 사람 사는 냄새도 나고 좋다. 호스텔 1층은 그냥 장사하는 바인데 바텐더가 DJ도 겸하면서 앰비언트, 트랜스 위주로 일렉트로니카 틀어주고 있다. 이 동네 어느 바를 가도, 심지어 셀프 빨래방에서도;; 요런 음악으로 나온다. 간간히 재즈도 틀어주고. 좋네 좋아.

 

- 베를린 무스타파네 케밥집 그립다ㅠㅠ 무스타파 무스타파 네덜란드 frites 찍어먹는 고소한 마요도ㅠㅠㅠ 드레스덴 다 좋은데 길거리 음식 괜찮은 걸 찾기 어렵네 쩝



2011. 6. 14

동양인 콕 찍어 검표를 당한데 이어 호스텔 오버부킹. 아니 한인민박도 아니고 호스텔이 ㅡㅡ+ 내일 매니저한테 매일 아침식사를 받아내든지 하루치 요금을 까버리던지 아무튼 제대로 땡깡부릴 작정. 참으로 아름다운 프라하의 첫 인상 >.<


체코 철도노조 파업 연기하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짐. 차라리 오늘이었으면 프라하에 늦게 올 수도 있는데 만약 16일에 24시간 파업해버리면 크라쿠프로 가는 야간열차 못 타게 됨. 직원에게 물어보니 협상 타결될지 16일에 예정대로 총파업 들어갈지 '자기도 모른다, 나도 일하러 오려면 매일 이용하는데 갑갑하다'고. 속사정이 무엇이든 파업을 하든말든 상관없는데, 하필 체코 입국일과 출국일을 귀신같이 고르는 건 오로지 내 여행을 방해하기 위한 파업인 거임?



떠나는 날에는 파업 때문에 가는 열차가 있을지 확실치 않고, 있어도 택시 타고 생돈 날리며 역까지 가야하는데다, 동양인만 보이면 바로 따라붙어서 내 표만 검사하고 주위 두세명만 대충 본 다음 내리는 검표원(현지인 승객은 제대로 검사 안하는 듯), 하루에 한두명씩 붙는 환전 사기꾼, 베네치아를 뛰어넘는 장사치들의 상술, 웬만한 명소는 할인만 해주는데다 값도 엄청나게 비싼 프라하카드. 

볼 거리도 많지 않고, 천박해질 대로 천박해진 관광지에 왜 다들 오려고 안달복달하는 거지? 파리와 더불어 이상하게 낭만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진 양대 도시. 그래도 파리는 혼잡하고 대체로 냉담한 도시민들이지만 볼 거리가 많기라도 하지.

심지어 호스텔 오버부킹 때문에 약간 할인받고 체크아웃-다시 체크인 했는데 원래 예약과 다른 12 beds dorm -_-+ 내일 매니저 만나서 또 싸워야함. ㅆㅂㄹ. 진심으로 하루 줄이고 떠나고 싶은데 이미 숙박비를 지불했고 그 망할 놈의 프라하카드 본전을 뽑아야해서 떠날 수가 없음. 어우 진짜.

혹시 오실 분이 있다면 1박 정도만 머물면서 간단하게 경치만 둘러보고 맥주와 전통요리만 즐기라고 강력히 권함. 오래 있을 도시가 아님. 차리라 2시간20분만 열차 타고 드레스덴에 가는 게 백배는 나음.
  




2011. 6. 16

Miyoun Won 한테 스릴을 너무 즐긴다고 놀렸는데, 체코 파업 때문에 내가 오늘 그 꼴을 당했다ㅠ 프라하역에서 죽어라고 뛰어서 겨우 열차 탔고, 10시간동안 두 번 환승 역시 뛰어다니며 겨우 크라쿠프 도착. 호스텔에 나와 스탭 둘뿐 -_-; 아직 여긴 성수기가 아닌가보다. 덕분에 부엌을 내 집처럼 쓰며 라면과 시리얼과 식빵&누텔라, 오렌지로 늦은 저녁 먹는 중. 행복하다ㅠ 먹어야 산다ㅠㅠ



2011. 6. 18


승용차든 자전거든, 밤에 술 먹고 타는 건 미친 짓이다. 아이고 까졌다ㅠ
크라쿠프는 물가도 싸고 다 좋은데 폴란드가 유레일패스 적용이 안되서 교통비가 너무 많이 든다. 여기가 체코 국경에서 얼마나 떨어져있다고 열차 티켓이 이렇게 비싼지 원. 이탈리아보다 비싸다 세상에.



2011. 6. 21

Wiener Symphoniker, Dirigent : Fabio Luisi / Konzerthaus, Wien.

Mahler "Symphonie Nr.3"

14유로 / 첫번째줄 앞(?)의 임시 줄 좌석. 눈높이에 보이는 단원들의 구두 -_-;

 

좌석이 참 특이했다. 1번 줄 앞의 또 하나의 줄이라니. 음향이 왜곡되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괜찮았고, 시야가 답답하긴 했지만 단원들 표정과 자세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바이올린을 턱에 꽉 붙일 때 들리는 목재 삐그덕거리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으니.

 

상임지휘자 파비오 루이지는 장신에 긴 금발, 매력 넘치는 얼굴이라 이탈리아 출신 젊은 지휘자라고 생각했는데...검색해보니 50이 넘었네? 금발은 가발인 것 같고 -_-;; 낚였군. 아무튼 열정적으로 지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음악은...굉장했다. 지금껏 본 공연 중에 최고! 말러가 청중들을 쥐락펴락하는 힘이 센 음악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정말 대단한 명연이었다. 거짓말 안 보태고 빈 필하모니 못 보는게 아쉽지 않을 정도. 말러를 처음 듣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가? 의외로 청중이 열광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기립박수도 2,3층만 하고 1층은 조용~  

 

귀국하면 '청중의 탄생' 꼭 읽어야겠다. 레코드로만 듣던 말러를 실연으로 들으니 왜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납득할 수 있었고, 이참에 청중을 어떤 식으로 휘어잡는지 책으로 이해해볼 요량.



2011. 6. 26

 

아 이것도 참 느낀 거 많고 할 말 많은데요. 크라쿠프든 아우슈비츠든 의외로 관광지화가 그리 심하진 않았어요. 원래 아우슈비츠도 무료입장에 가이드는 선택이었는데 최근에 가이드 투어 필수로 바뀐 것이고요. 근데 그리 비싸지도 않았고 가이드가 정말 헌신적이어서 괜찮았어요.
아마 독일인도 계속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2005년에 오셨을테니 베를린 홀러코스트 기념관 혹시 가보셨어요? 제국의회 의사당 근처인데요. 2003년에 독일 연방의회 결정으로 건축됐어요. 지상은 관을 상징하는 검은 돌덩이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지하엔 홀러코스트를 기념하는 소규모 전시가 있어요. 근데 이 전시가... 정말 시종일관 희생자들의 고통을 환기시키고 관람객의 감각을 자극해요. 묵직하게요. 첫번째 방엔 유태인 가족 사진과 간단한 프로필을 약한 조명 위에 전시해놓고, 두번째 방엔 아무 조명 없이 바닥 아래에 희생자들이 남긴 기록들을 전시해놓고 그 쪽만 불을 살짝 켜놓고, 뭐 이런 식.

마지막엔 유럽 수용소의 모든 위치와, 모든 기념관 위치를 지도로 쫙. 무료입장이고요. 현대사 전시로는 1급이었는데,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하는가 싶더라고요. 내가 아마 독일 민족주의자라면, 독일의 심장부 턱 밑에다 해놓은 역사적 치욕과 부끄러움의 상징이 마음에 걸리지 않을까 싶었어요. 대놓고 말은 못 하겠지만요. 이걸 보고 있자니 팔레스타인도 떠오르고 참..

 빈에서 하루 한 끼를 케밥으로 때웠더니 베를린 무스타파네 케밥이 그립다ㅠ 크라쿠프 Polakowski 돈까스도ㅠㅠ 진짜 빈 슈니첼 먹는 순간 갑자기 크라쿠프 요 식당이 그리웠다. 절반 가격에 훨씬 맛있었는데ㅠ 인생 최고의 돈까스 +.+

지금은 빈 거쳐 부다페스트입니다. 빨리 자야하는데 사진 올리다보니 설명이 너무 길어져서ㅋㅋ 저는 크라쿠프가 참 한국 1990년대 같았어요. 특히 시장이랑 milk bar요. 할머니들 표정에선 삶의 애환이 짙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 촌티 나지만 어떻게든 멋도 내보려고 하고, 바빠보이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와 활력도 느껴지고ㅎㅎ 기대와 고단함, 무뚝뚝함과 순박함이 교차한다고 할까요. 순전히 수용소 가려고 머물렀고, 프라하 파업 때문에 4일이나 있게 되었는데, 의외로 정말 좋았어요. 


 
posted by opwopw 2011.10.02 23:05
White wine for antipasto, red wine for primo, white wine for dolce.

숙박 제공에 감사를 표하는 의미에서 사온 진상용 공물...이랄까. 포도 재배, 와인 주조 농가에서 직접 사온 거라 매우 저렴. 토리노만 와도 10유로 가까이 가격이 올라갈 것이고, 이탈리아 다른 지방에선 10유로 넘어갈 듯? 맛은 그동안 마셔왔던 8유로쯤 되는 와인들보다 더 나았다. 특징지을만한 부가적인 맛 없이 깔끔하고 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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